〈오디세이〉 결말 해석|오디세우스는 왜 왕좌를 버렸나? 원작과 달라진 마지막
※ 이 글에는 영화 〈오디세이〉의 결말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끝까지 보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싸웠던 오디세우스는 왜 마지막 순간 왕좌를 포기했을까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긴 세월 동안 바다를 떠돌고, 수많은 동료를 잃고,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서는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이 궁전을 점거하고 있었고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궁전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활을 이용한 시험을 통과한 뒤 정체를 드러내고 텔레마코스와 함께 구혼자들을 처단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큰 흐름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원작과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의 왕좌에 다시 앉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왕좌를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넘겨주고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배를 타고 떠납니다.
원작이 무너진 왕의 귀환과 질서 회복을 보여준다면 영화는 오히려 왕이 자신의 시대를 끝내고 떠나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왜 이런 결말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호메로스 원작과 영화의 마지막은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디세이〉 마지막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오디세우스는 긴 방랑 끝에 이타카로 돌아오지만 곧바로 자신이 왕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사이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먼저 확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궁전에는 수많은 구혼자가 머물며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한 이들은 사실상 그의 집과 권력까지 차지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이들에게 위협받습니다.
결국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의 활을 이용한 시험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활을 오디세우스가 사용하면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텔레마코스와 힘을 합쳐 궁전을 차지하고 있던 구혼자들을 처단합니다.
이제 집도 되찾았고 가족도 되찾았습니다.
당연히 다음 장면은 오디세우스가 왕좌에 다시 앉는 모습일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이 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에서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으로 다시 통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줍니다.
그리고 페넬로페와 함께 배를 타고 다시 바다로 향합니다.
그토록 집에 돌아오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 집에 도착한 직후 다시 떠난다는 점에서 상당히 역설적인 결말입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오디세우스가 겪은 변화를 생각하면 마지막 선택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왜 왕좌를 버렸을까?
놀란의 영화가 그리는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역경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트로이 전쟁과 긴 항해에서 벌어진 일들이 계속 따라다닙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죽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선택 때문에 죽은 사람들과 전쟁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마주하도록 만듭니다.
트로이 목마 작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략적으로 보면 놀라운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트로이는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영화 속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 전쟁은 단순한 영웅담으로 남지 않습니다.
시논이 결말 해석에서 중요한 이유
엘리엇 페이지가 연기한 시논(Sinon) 역시 이 지점에서 중요해집니다.
시논은 트로이 목마 작전과 깊게 연결된 인물입니다.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시논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전쟁의 결과를 다시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즉 시논은 단순히 트로이 목마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게 만드는 인물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후반부의 왕좌 포기는 갑자기 나온 결정이라기보다 영화 전체에서 축적된 죄책감과 책임 의식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왔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영웅 이야기에서는 긴 모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잃어버린 집을 되찾고 왕은 왕좌에 돌아가며 무너졌던 질서가 회복됩니다.
하지만 〈오디세이〉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집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과거에 벌어진 일까지 사라지는가?
영화가 보여주는 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타카로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만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가 경험한 전쟁과 죽음, 방랑은 이미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텔레마코스가 왕이 된 이유
오디세우스가 떠나면서 텔레마코스가 이타카의 새로운 왕이 됩니다.
이것 역시 단순한 왕위 계승 이상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과거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전쟁과 정복, 영웅의 명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반면 텔레마코스는 그 전쟁 이후에 성장한 새로운 세대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좌를 넘겨주는 장면은 결국 과거의 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장면으로도 읽힙니다.
호메로스 원작에서는 어떻게 끝날까?
이 지점에서 영화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크게 갈라집니다.
원작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차지하고 있던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페넬로페와 재회합니다.
하지만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왕좌를 포기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지위와 가정을 되찾습니다.
또한 원작은 구혼자들을 죽이는 장면에서 바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구혼자들을 죽인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구혼자들을 처단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버지 라에르테스(Laertes)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죽은 구혼자들의 가족들이 복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가족과 왕권을 지키기 위해 구혼자들을 죽였지만 그들의 가족 입장에서는 또 다른 복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결국 이타카에서는 다시 한번 피의 충돌이 시작될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원작에서는 아테나가 복수를 멈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아테나가 개입합니다.
아테나는 더 이상의 복수와 살육이 이어지는 것을 막습니다.
이로써 오디세우스와 구혼자 가족 사이의 충돌도 끝나고 이타카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따라서 원작의 마지막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디세우스 귀환
↓
구혼자 처단
↓
페넬로페와 재회
↓
아버지 라에르테스와 재회
↓
구혼자 가족들의 복수 시도
↓
아테나의 개입
↓
평화 회복
결국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무너졌던 질서가 다시 복원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는 원작의 마지막을 완전히 바꿨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결말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원작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라에르테스와의 재회, 구혼자 가족들의 복수 시도, 아테나의 개입을 통한 평화 회복 대신 전혀 다른 선택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신이 내려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오디세우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 선택이 바로 왕좌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원작이 외부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결말이라면 영화는 오디세우스 개인의 내면적인 변화에 훨씬 더 집중합니다.
페넬로페가 함께 떠나는 이유
중요한 것은 오디세우스가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페넬로페 역시 오디세우스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납니다.
이 선택은 영화 초반부와 연결해서 보면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영화 초반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을 선택하는 대신 자신과 함께 떠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당시 오디세우스는 결국 전쟁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배에 오릅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택하지 못했던 삶을 마지막에 다시 선택하는 셈입니다.
마지막 태양이 의미하는 것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태양과 빛 역시 마지막 장면과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페넬로페는 과거 오디세우스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당시에는 전쟁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두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떠나면서 그 선택이 아주 늦게 실현됩니다.
따라서 마지막 항해는 단순히 왕좌에서 쫓겨난 사람의 추방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속죄의 여정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과거에 선택하지 못했던 삶을 다시 선택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원작과 영화 결말 차이 한 번에 정리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 이타카 귀환
→ 구혼자 처단
→ 페넬로페와 재회
→ 라에르테스와 재회
→ 구혼자 가족들의 복수 시도
→ 아테나 개입
→ 이타카의 평화 회복
→ 오디세우스의 지위 회복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오디세우스 이타카 귀환
→ 구혼자 처단
→ 가족과 재회
→ 자신의 전쟁과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직면
→ 왕좌를 텔레마코스에게 넘김
→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바다로 떠남
원작과 영화가 말하는 ‘귀환’ 자체가 다르다
두 작품의 차이는 결국 귀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귀환은 잃어버린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입니다.
집을 되찾고 아내를 되찾으며 가족과 왕으로서 자신의 위치까지 회복합니다.
반면 놀란의 영화에서 귀환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집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집을 떠났던 과거의 오디세우스와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과거와 똑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새로운 선택을 합니다.
〈오펜하이머〉와 닮은 부분도 있다
이런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놀란 감독의 전작 〈오펜하이머〉가 떠오르는 부분도 있습니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뒤늦게 마주하게 됩니다.
〈오디세이〉에서 그것은 트로이 목마와 전쟁,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따르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그 결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놀란은 오디세우스를 단순한 승리자가 아니라 승리 이후에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일까?
그래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단순한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아내와 재회했고 아들을 만났으며 그토록 원했던 고향에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왕좌만큼은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시대를 텔레마코스에게 넘기고 자신은 다시 바다로 향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항해는 실패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선택한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왜 왕좌를 버렸나?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왕이 될 자격이 없어서 왕좌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왕좌를 내려놓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영화의 표면적인 목표였다면 놀란 감독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은 그 이후입니다.
“긴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출발했을 때와 같은 사람일까?”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돌아와 자신의 왕좌를 되찾습니다.
놀란의 오디세우스는 돌아온 뒤 오히려 왕좌를 버립니다.
그리고 텔레마코스에게 새로운 시대를 맡긴 채 페넬로페와 다시 바다로 향합니다.
그래서 〈오디세이〉의 마지막은 단순히 원작의 결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귀환’이라는 이야기 자체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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